여름이다. 본격적인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장마가 아직 완전히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여름이다. 미니스커트와 핫팬츠가 거리를 장악하고 반팔은 기본, 민소매는 옵션이다. 즉, '겨'에서 땀이 나는게 느껴지니까 여름이 맞다.그런데 옷만 짧아지면 뭐하나, 긴 혓바닥의 하이탑 슈즈는 이제 애물단지다. 장시간 외출이라도 하는 날엔 발을 통째로 삶는 것 같은 기분이다. 무엇보다 위에는 시원하고 아래는 더우니 정말 미칠 지경이다. 때문에 목 짧은 스니커즈를 신지만 뭔가 아쉽다. 지면과 발바닥 사이의 거리가 습자지 두께마냥 가까워져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다. 가볍고 편안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그래서 여름이면 여자들을 부러워한다. 발 시원하게 내 놓고 다니는게 너무너무 부럽다. 게다가 신발은 얼마나 이쁜가. 힐은 물론이고 플랫 역시 마찬가지다.지하철 좌석에 앉아 맞은편에 앉은 아저씨의 신발을 본다. 오 샌들이다. 그런데... 발가락 양말이다. 음 최곤데? 저것이야말로 폭풍간지다. 젠장. 그 옆에 앉은 아가씨는 글레디에이터 샌들을 신었다. 뭐야 저건?사실 글레디에이터 샌들은 남자용이다. 로마 검투사의 신발을 모티브로 실생활에서 시원하고 편하게(사실 이건 신을 때 좀 불편할 거다. 특히 목이 긴 경우라면!!) 신을 수 있게끔 만든 패션 아이템이다. 영화 '글레디에이터'에서 러셀 크로우가 허리케인간지를 내뿜으며 신고 나왔을때 수 많은 디자이너가 '야호!!'라고 소리쳤단다. 글쎄 믿거나 말거나.어쨌든, 이 글레디에이터 샌들은 남성적인 매력을 풀풀 풍겨서 꽤 멋스럽다. 여성이 신었을 때는 카리스마 넘치는 전사의 모습을, 남성이 신었을 때는... 그래, 사실 거의 보지 못했다. 아니 단 한번도 못봤다.(사진 빼고!!) 왜?! 이 놈은 본래 남자의 것이지만 너무나 많은 제품이 여성용으로 나와서 남성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일까. 아니면, 샌들이라면 아저씨 샌들을 자연스래 떠올리게 되는 이미 틀에 박혀버린 생각 때문일까.안타까운건, 지난 두 해 여름에 샀던 글레디에이터 샌들이 있다. 그것도 세 켤레나. 하지만 단 한번도 신고 밖에 나가보질 못했다. 다른건 다 하겠는데 이상하게 신고 나갈 용기가 안나더라. 덕분에 신발장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신고 싶다. 웃통 까고(?) 오른손에 칼이나 창들고 왼손에 방패들고 빨간색 망토 하나 두르고 '디스 이즈 스파르타!!'를 외치든지 하면서 미친놈마냥 거리를 활보하는 것 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신고 나가고 싶다.내가 이렇게까지 남의 눈치를 보면서 살던 인간이었나 싶다. 음... 나 왜 이렇게 됐나? (스스로를 자책하는 중.)뭐 아무튼.. 내가 가지고 있는건 남성용으로 나온 거니까 올해부터는 그냥 신어야겠다. 엄지 발톱에 검은색 매니큐어라도 하나 바를까. 아아.. 그럼 발톱 썩은 것 처럼 보일지도 모르니까 관두자. 대신에 다리 제모는 좀 해야겠지?이미지 출처 :: google fashion-era / blog.shopfli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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