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케이블 TvN 채널에서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화성인 바이러스>. 과감하게 일반인을 출연시켜 MC들과의 대담(?)을 하게끔 하는 상당히 도발적인 포맷의 프로그램이었다. 주변의 독특한 사람들이나 특이한 사람들, 그리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출연하는 류라고 해야 할까나.어쨌든, 그날은 마침 '명품으로 7억을 탕진한 남자' 라고 하여 한 남자가 출연했다. '미쳤군.' 하고 생각함과 동시에 옛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한때 나도 굉장한 명품 중독자였다.(명품이라는 단어를 싫어하지만 모두가 알기 쉽게) 즉, 뭔가가 필요하거나 사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무조건 고가의 브랜드만 고집했다. 흰색 블라우스 50만원, 가방 200만원, 구두 100만원, 바지 60만원 등등등... 물론 지금에야 1, 2만원 가지고도 벌벌 떨기도 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돈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무조건 '일단 질러-' 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점차 진짜 '패션'을 알고 난 이후부터 그러한 브랜드에서 쇼핑하는 횟수가 기하 급수적으로 줄어들었고 대신에 진짜 '명품'을 고르는 안목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명품은 잘 만들어진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명품이 고가의 브랜드가 될 수는 있으나 고가의 브랜드가 명품이 될 수는 없다. 왜냐? 고가의 브랜드라고 해서 정말 훌륭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디자인과 소재, 제단 등등의 공정들이 반드시 들어갔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한 브랜드에서 실로 수석 디자이너가 직접 참여하는 라인은 30%가 채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대부분 기존 브랜드가 가지는 포맷을 수정, 재생산, 그리고 기타 악세사리의 경우 악세사리 전문 브랜드에 라이센스만 빌려주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랄까.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기수십만, 수백을 호가하는 제품이라고 해도 따지고보면 몇만원짜리 저가 브랜드 제품과 크게 다를바 없다는 것이다. 물론 디자이너가 런웨이에 올린 제품들은 얘기가 달라진다. 달리 설명할 말이 없다.
다시 얘기를 처음으로 돌려서. 명품으로 7억을 탕진... 이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본인은 대한민국의 명품 소믈리에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지만, 방송에서 그가 말하는 것들을 들어보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척 보면 이 제품이 무슨 제품인지, 제품명이 무엇인지 알면 뭐하나. 결국에 사람이 하는 것이다. 사람이 명품을 입어야지, 명품이 사람을 입어서야 무슨 소용.
대부분의 명품은 '옷', '악세사리'. 즉 거의 '패션'을 지칭하는 말이기 때문에 명품을 정말 제대로 알려면 '패션'을 먼저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의 모습과 말에서 '패션'은 없었다. 패션은 디테일이나 실루엣 따위가 전부가 아니다. 패션은 숲이다. 거대한 숲. 아무리 그 전체를 보려고 해도 끝없이 우거진 나무들 때문에 한 눈에 그 거대한 모습을 담을 수 없는 것이다.
여담을 조금 말하자면, 명품이 오래간다는 생각. 이건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사람들은 명품을 대부분 오래 쓴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예로 '가방'을 들어 보자. 고가 브랜드의 가방은 사실 그다지 튼튼하지 않다. 시장에서 파는 몇만원짜리 가방보다 훠어얼씬 약하다. 상처도 잘 나고, 오염도 잘된다. 박음질? 장인이 한땀한땀 박은 것보다 요즘은 공장에서 기계로 박는게 더 튼튼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더 오래쓴다. '조심하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조심하기 때문이다.
비싸게 주고 샀기 때문에 조심한다. 나 역시 그렇다. 몇백만원을 주고 샀으니 그 몸집에 흠집이라도 난다면 얼마나 가슴아프겠는가. 반대로 몇만원짜리는 흠집이 나든지 말든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싸니까. 아쉬운건 없다. 막 굴린다. 그러다보면 오래 못간다.
몇년전에 홍콩에서 샀던 발리 제품의 크로스백이 하나 있다. 크기가 큼직해서 카메라 가방으로 썼다. 카메라 가방은 막굴릴 수 밖에 없다. 맨바닥에 그냥 내려놓고, 이리저리 치이기도 하고, 벽에 긁히기도 하고, 먼지는 기본으로 덮어 쓴다. 그렇게 한 6개월 썼더니 그야말로 가방이 걸레가 됐다. A/s도 못하겠더라. 옷방 어딘가에 쳐박아 뒀다. 가죽은 색이 변하고, 울면서 뜨고, 박음질은 군데군데 터졌다.
아무리 비싼 제품이라고 해도 나처럼 험하게 쓰면 값싼 제품과 크게 다를바 없다. 브랜드이기 때문에? 흥, 틀렸다. 브랜드는 돈으로 덩치를 불린 것에 불과하다. 진짜 명품은 돈으로 덩치를 불린 녀석들과는 별개다.
왜 듣도 보지도 못한 수트며, 가방이며, 구두며, 이런 것들이 실제 브랜드에서 판매하는 가격보다 몇배 이상 비싼지 아는가? 이런 것들은 역사가 있었고, 그 역사가 현재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들이 현재 패션의 가장 머리 꼭대기 위에 서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비싼거다.
급 결론.
그 프로그램에 출현했던 화성인. 그리고 맹목적인 명품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명품을 알기 전에 그 브랜드, 가치에 대한 본질을 알기 바란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해야한다는, 그런 바보 같은 짓거리는 못봐주겠다. 취향? 그건 취향을 넘어선 문제다. 비싸니까 좋아보이고 남이하니까 좋아보이고 남이하니까 비싸보이고, 그리고 나도 비싼거 하나 해야겠다는, 제발 그런 생각을 버리자.
p.s : 디자이너 브랜드를 명품이라고 부르는 멍청이가 없기를 바란다. 디자이너 브랜드는 디자이너 브랜드일 뿐이지, 명품이 아니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수십만가지 생각들이 뒤엉켜서 횡설수설하여 굉장히 감정적으로 글을 썼는데, 양해 부탁합니다.)
이글루스 가든 - 우리는 패션 블로거


덧글
NePHiliM 2009/05/21 17:28 # 답글
끙 =ㅅ= 명품 말고 좋은거 입고싶어요...수트..수트.. [ ..]
세기 수트라든지 =_=
-네피
HAUL 2009/05/21 17:31 #
사 사실 나는... 말입니다. 수트를 잘 몰라요.................................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요즘 이상하게 수트 좀 땡기던데)
viajero 2009/05/21 18:41 # 삭제 답글
하고싶은 말을 제대로 해주시면 좋을텐데요.사실 정말 그 '패션'이 무엇인지 정말 알고 싶어도
전문인이 아닌 입장에서는 눈감고 코끼리 만지는 격이던 걸요.
많이 입어봐야 안다... 말은 좋지만
기회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패션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것인데,
많이 입어봐야 안다는 말은 별로 도움이 안되는 듯 싶어서요.
블로그 눈팅한지는 오래되었는데 댓글은 이제서야 남기네요.
글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HAUL 2009/05/21 18:55 #
말씀하신대로 그 패션을 아주 정확하게 저도 잘 모른다는 겁니다. 그저 제가 생각하는 말 그대로 '내가 생각하는 패션'만 있을 뿐이랄까요. 상당히 주관적인데 객관적 입장으로 바라보는게 저 역시 사실 어렵습니다...횡설수설 했어요. ㅎㅎ 원고를 쓸 때 처럼 가이드라인을 잡아두고 쓰는게 아니라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다보니 늘 원래의 목적을 이뤄버리곤 합니다. 지적, 재밌게 읽어주신다니 그저 감사합니다.
chan 2009/05/21 19:37 # 답글
사실 전 패션을 '알고' 싶은건 아닌것 같아요. 즐기고 싶다는..
HAUL 2009/05/21 23:00 #
즐겨야죠. 즐기는 맞아요. 안다는 것 자체가 자만에 빠지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구요.저는 알 것 같아도 모르겠어요. 답이 없다랄까. 깊은 심연에 갈수록 빠지는 느낌이에요.
물꿈 2009/05/21 20:14 # 답글
아직 명품같은 건 잘 모르겠어요. 어떤 것이 진정 명품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건지도요.그저 스스로가 입고 싶은, 좋아하는 스타일의 것들을 좋아하는 것 뿐이예요.
이것저것을 쫒아가는 것보다는
그냥,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HAUL 2009/05/21 23:03 #
충분히 동감하고 이해가 가요. 어차피 명품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만들어낸 수식어일 뿐이죠. 본질이 어찌됐든 뭐가됐든 사람이 쓰는거 아니겠어요? 비싸고 싸고가 중요치 않죠.
xmaskid 2009/05/21 21:20 # 답글
저도 명품이 어떤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세상에는 예쁘고 재미있는것들이 잔뜩있는데, 많은 예쁘고 재미있는것들은 비싸다...정도일까.
HAUL 2009/05/21 23:05 #
싼 것들도 명품이라 불릴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명품=비싼거, 라는 공식이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많은 사람들이 그 공식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죠.
오란씨 2009/05/21 22:10 # 답글
ㅎㅎ 1학년떄 장학금으로 옷사는데 흥청망청 썼던게 생각나서 좀 뜨끔하였습니다. 덕분에 배운것도 많이 있었지만요 :)단순히 가격이 비싸기떄문에 좋은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중에 별것 없는 것도 있다는걸 알고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게 중요하다는것에 동감하고 갑니다
HAUL 2009/05/21 23:06 #
^^ 다들 그런 경험은 조금씩 있나봐요. 잘 알고 계시네요... 꼭 경험해봐야만 하는건 아니지만 좋은 경험이 되었길 바래요. '출혈'은 지난 일임에도 불구하고 후회되는 일이기도 하겠지만요.. ^^
.... 2009/05/22 00:31 # 삭제 답글
명품...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동대문에서 10만원 안팎으로 산 정장과 백화점에서 50만원 혹은 그 이상 들여서 산 정장의 퀄리티 차이는 생각보다 어마어마 했습니다. 몸에 '감기는' 느낌부터 다른 것은 기본이고, 박음질, 끝단 처리, 피팅, 소재 등등등, 그만큼 거액을 지불할 만 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이상되는 가격은 입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요;;; 단순히 디자인을 넘어서 그야말로 '품질'의 차이가 몸으로 느껴지는데, 다시 동대문 가서 옷을 사기는 쉽지 않더군요....
HAUL 2009/05/23 11:41 #
정장을 비롯한 손이 많이 가야하는 의류의 경우엔 그 차이가 상당합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저 역시도 동감하는 부분이거든요.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건 단순한 '옷' 이상이라는 거에요. 품질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아무리 비싼 정장을 입고 다닌다고 한들 그 복식을 무시한다면 동대문에서 파는 10만원짜리 정장과 별반 다를바 없지 않겠습니까? ㅎㅎ
k 2009/05/22 01:11 # 삭제 답글
제가 느끼기엔 박음질 암만 튼튼해도 마구 박으면 그만큼핏이라던가 각같은데 다 죽어버립니다. 그래서 싼거 비싼거 명품
이런거 차이나는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왜 샤넬같은게 명품으로 불리며 비싼 가격을 받는지
본인이 비싼 옷들 사 입어보셨으면 아실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동대문 2만원 쉬폰치마하고 30만원 쉬폰치마 바느질 디테일이 다른걸요.
k 2009/05/22 01:13 # 삭제
이어서 씁니다.그래서 전 튼튼하냐 안튼튼하냐로 명품이라 불리는 것들이 사실은 다
아니었다고 하시는게 이해가 안돼네요.
HAUL 2009/05/23 11:47 #
저도 한때 옷을 만들어봤던 사람입니다. 그걸 제가 모르겠습니까?ㅎㅎㅎ많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명품은 튼튼하고 오래간다'라는 것에 많이 치중해서 썼습니다. 물론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원단과 재단 등을 다뤄본 바로 말씀드리면 무조건 좋다고 해서 그 내구성도 좋은건 아니거든요...
그리고 핏은 어떻게 박음질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게 아니라 처음 패턴을 어떻게 뜨느냐에 따라 가장 크게 결정됩니다. 박음질은 그 다음이지요. :)
명품공부 2009/06/09 15:44 # 삭제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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